정월대보름 세시 풍속 귀밝이술 더위팔기 추억

정월대보름은 음력으로 1월 15일입니다. 설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인데 어릴 적에는 설날보다 더 많은 즐거운 행사가 많았지요. 정월대보름 세시 풍속으로 귀밝이술, 더위 팔기, 달집 태우기 등이 떠오르네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곡밥

 

 

지역이나 시절에 따라 행하는 풍속은 조금씩 달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정월대보름 전날이 기억나네요.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해서 어린 마음에 잠을 참느라 불안에 떨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끝까지 잠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깜짝 놀랐지요. 어른들이 일부러 눈썹에 하얀 밀가루를 발라놓았기 때문입니다.

 

놀림을 당하는 소동이 끝날 즈음 담너머에서 친구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대답을 하고 뛰어나가니 "내 더위 다 사가라~"라면서 웃으며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전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절대 대답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잊었던 것이지요. 너무나 억울해서 형제간에 이름을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미 다 알고 난 뒤였으니까요.

 

그때 어머니께서는 오곡밥을 해놓고 불렀습니다. 오곡밥 옆에는 진채라고 부르는 묵은 나물들이 가득했고요. 버섯, 가지껍질, 호박, 무잎 등으로 만든 나물들로 아침을 맛있게 먹었네요. 나중에 부럼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았지요. 설날에는 떡국을 먹지만 정월대보름에는 나이 수 만큼 부럼을 깨물어 먹는데요. 이를 부럼 깨기라고 했습니다. 부럼을 깨물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견과류는 구하기 어려워서인지 부럼 깨기는 그리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월대보름 진채

 

식사가 끝날 즈음 어른들이 술 한 잔을 주십니다. 특히 할머니가 주시던 술이 떠오르는데요. 이를 귀밝이술이라 하면서 마시라 권하셨지요. 귀밝이술을 마심으로 해서 귓병을 막을 수 있고 일 년동안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래 술이라는 것이 독해서 먹기는 어려웠는데요.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대단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가면 친구들이 나와 있었어요. 그때는 이름을 불러도 꿈쩍하지 않으니 내 더위 사가라는 말은 공허하게 혼자 떠드는 소리가 되었고 놀기에 바빴는데요. 연을 날리거나 쥐불놀이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면 논두렁을 태우는 일도 벌였죠. 전라도 고창지역은 다리밟기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성곽이 없으니 논밭사이를 뛰어다니면서 논두렁 태우기와 쥐불놀이에 신나 했지요.

 

그러다가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의 하이라이트인 달집 태우기 준비를 했습니다. 가까운 산으로 가서 생솔잎을 따고 작은 소나무를 꺾어 동네 어귀에 모았지요. 이러한 일은 아이들이 도맡아 했는데 달집 만들기는 나이 많은 청년들이 했습니다. 그래서 달이 떠오르는 것을 기다려 불을 지르는데 그 위세가 대단했다는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마음이 급한 동네에서는 달이 떠오르기도 전에 달집 태우기를 하는 바람에 싱겁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요.

 

보름달이 떠오르면 동네 어르신들은 사용하지 않는 옷가지를 가져와 불에 던지면서 소원을 빌었습니다. 누구에게 비는지 몰라도 꼭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요. 하도 진지하게 두 손을 모아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어둠이 내리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지요.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은 그야말로 하루종일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즐겼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는 그런 것들이 추억으로 남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만요. 

 

오늘 밤은 맥주 한 잔을 땅콩으로 마시면서 이명주를 대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곡밥이나 나물을 만들어 먹는 세시풍속은 어느 정도 따라 할 수 있지만 그 외 밖에서 진행했던 풍속들은 추억 속으로 잠들어 지난 기억을 들추어야 할 판입니다. 정월 대보름은 그렇게 우리의 소중한 명절이었네요.